우리 집 위층에는 거의 아흔이 다 된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두 분은 늘 둘뿐이었다.
누가 찾아오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나갈 때도 둘.
들어올 때도 둘이었다.
어느 날, 그분들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물었다.
“우리 집, 사시겠어요?”
나는 잠깐 멈칫했다.
나는 이미 집이 있었다.
그런데 왜 그 집을 또 사야 하나 싶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주신다면 3,300만 원만 받겠습니다.”
오래된 다세대주택이었다.
65㎡ 정도.
시세로 따지면 최소 8,700만 원은 넘는 집이었다.
내 첫 생각은 이거였다.
뭔가 이상하다.
할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직접 쓴 계약서였다.
글씨가 너무 반듯했다.
그 나이에 쓴 글씨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조건은 세 가지뿐이었다.
첫째, 3,300만 원을 한 번에 지급한다.
둘째,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살 수 있게 한다.
셋째,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집 안의 모든 것은 나에게 넘긴다.
나는 두 분을 집 안으로 모셨다.
할머니는 품속에서 작은 철제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는 등기 관련 서류, 주민등록증 사본, 그리고 사망진단서 세 장이 들어 있었다.
한 장은 아들의 것이었다.
서른두 살.
간암.
한 장은 딸의 것이었다.
스물아홉 살.
교통사고.
마지막 한 장은 유일한 손자의 것이었다.
일곱 살.
백혈병.
사망한 해는 각각 2008년, 2011년, 2014년이었다.
종이 모서리는 전부 닳아 있었다.
얼마나 많이 만졌는지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우리 형편을 알아봤다고 했다.
대출도 없고, 직장도 안정적이고, 사람도 괜찮아 보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돈은 집값이 아닙니다.”
목소리가 조금 쉬어 있었다.
“우리 장례 보증금입니다.”
두 분의 연금은 합쳐서 한 달에 약 136만 원.
생활은 된다고 했다.
그런데 무섭다고 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한꺼번에 죽었는데,
집 안에서 썩어가고,
냄새가 나고 나서야 발견될까 봐.
할아버지는 잠깐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3,300만 원을 받고 서류를 갖고 있으면, 그때부터 책임이 생기는 겁니다. 우리가 죽으면 시신을 수습해 주고, 화장해 주고, 제일 싼 납골 자리 하나 잡아서 같이 넣어주면 됩니다. 남는 돈은 다 가져가세요. 우리가 당신을 고용하는 겁니다.”
나는 목이 꽉 막혔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말없이 누런 서류봉투 하나를 꺼내 내 앞으로 밀었다.
안에는 세 묶음의 자료가 들어 있었다.
첫 번째는 두 분이 늘 먹는 약 목록과 건강보험 관련 서류.
두 번째는 장례식장 기본 상품 가격표.
가장 싼 193만 원짜리에 빨간펜으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세 번째는 통장 사본이었다.
잔액은 2,240만 원 조금 넘게 있었다.
할머니가 말했다.
“비밀번호는 뒤에 적어놨어요. 병원비가 부족하면 여기서 쓰세요. 남으면 그 3,300만 원까지 전부 가져가세요. 공증도 하겠습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못 잤다.
머릿속에는 그 집 베란다에 걸려 있던 낡은 옷 두 벌이 계속 떠올랐다.
너무 많이 빨아서 색이 바랜 옷이었다.
그리고 매일 오후 네 시마다 위층에서 아주 작게 들리던 옛 노래 방송 소리도 떠올랐다.
사흘 뒤, 나는 현금 3,300만 원을 준비했다.
두 분과 함께 공증을 받으러 갔다.
계약서에는 내가 한 줄을 더 넣었다.
나는 매주 최소 한 번, 위층에 올라가 두 분을 확인한다.
할아버지는 서명할 때 손을 심하게 떨었다.
지장을 찍고 나서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 눈빛은, 오래 짊어지고 있던 짐을 겨우 내려놓은 사람 같았다.
그날부터 나는 매주 토요일 오전마다 위층에 올라갔다.
딱 30분 정도 앉아 있었다.
두 분은 말이 많지 않았다.
나는 전구를 갈아주고, 수도꼭지를 고쳐주고, 문고리를 봐드렸다.
할머니는 가끔 직접 말린 무말랭이를 작은 봉지에 담아 내 손에 쥐여줬다.
특별한 말은 없었다.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일곱 달 뒤, 어느 화요일이었다.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가 아침에 장을 보고 돌아오다 계단 복도에서 쓰러졌다고 했다.
살리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올라갔을 때, 할머니는 혼자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이미 차가워진 할아버지 손을 잡고 있었다.
아주 조용했다.
나를 보더니 한마디만 했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해요.”
나는 두 분이 표시해 둔 가장 싼 장례 상품으로 장례식장에 연락했다.
유품을 정리하다가 할아버지 베개 밑에서 낡은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마지막 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2023년 11월 5일. 아래층 이웃이 와서 부엌 수도꼭지를 고쳐줬다. 점심을 먹고 가라고 했다. 내가 담근 반찬이 맛있다고 했다. 오늘은 우리가 그 사람에게 폐를 끼친 지 214일째 되는 날이다. 돈은 헛쓰지 않았다. 사람도 잘못 보지 않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화장한 지 37일째 되는 날 세상을 떠났다.
잠든 채로 갔다.
할머니 쪽 침대 협탁을 정리하다가 나는 멈춰 섰다.
그 안에는 지난 일곱 달 동안 내가 가져갔던 과일과 과자 포장지가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할머니는 그것들을 전부 깨끗이 씻어놨다.
반듯하게 눌러놨다.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가장 아래에는 새 통장 하나가 있었다.
열어보니, 내가 처음 드렸던 3,300만 원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예금주는 내 이름이었다.
나는 두 분을 한 쌍이 함께 들어갈 수 있는 납골묘에 모셨다.
가장 싼 곳은 고르지 않았다.
비석에는 이름과 태어난 해, 떠난 해만 새겼다.
그 집을 정리하던 날, 햇빛이 좋았다.
낡은 가구들은 버리지 않았다.
텅 빈 거실에 서 있는데,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두 분이 3,300만 원과 빈집 하나로 사 간 것은 내 돈이 아니었다.
앞으로 내가 수십 년을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두 분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에 내려앉을 그 기억이었다.
이것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비싼 부탁일 것이다.




































""""""""예금주는 내 이름이었다."""""""""""""
요즘 통장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남이 내 이름으로 통장 못만들껄요?
안하고 정리할수 있을까?
눈물때문에 앞이 흐려지네요
물론 영화같이 아름다운 스토리도 많이 있죠. 슬픔은 행복의 비료 입니다. 지금 슬픈 분들이 있다면, 더욱 행복한 것을 느끼기 위해 그것을 체험하고 있다고 보심 됩니다.
어느덧 50을 바라보는 나이라서
가끔씩 저의 마지막이 어떨지 생각해봅니다
50중반인데 눈물 흘리게 하노?
2. 딸이 14년 29살에 세상을 떠났으면 현재 40살일텐데 90이 다된 부부라면 그 시절에도 엄청난 노산임. 아늘도 노산인데 딸은 더 노산이라 믿음이 가질 않지만,
3. 미친 개소리가 많은 인터넷 글 중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고, 소설이구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눈물이 나게 하는 글이라 합격!
손자가 2014년
가슴이 먹먹해 지고..계속 눈물만 나네요~
살아 가면서 민폐는 하지랄 말자
교훈이다
인생 참!
보잘 것 없죠?
좋은 이웃에게 부탁을하고 가셨네요
예금주? 장난해?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 좋은 교훈 받아 갑니다
내일은 부모님에게 전화라도 드리겠습니다.
며느리가 있는데 재산 상속분?
감동 파괴가 아니라 보배 아재들 초등학교도 안나왔어??
조금 억지스럽지만 가능한 내용이고 삶을 되돌아 보는 좋은 글 입니다
곁을 준 이 가 떠나는 슬픔은
그 어떤 고통보다 더 힘든것 같아요
예방 주사도 없고
익숙해지지도 않는..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이거 읽어보라고 전해 줬습니다. 다 읽고 이게 그리 슬펐어?
와이프 눈가는 말라 있네요...
전 담배 피러 니왔어요
신나는 이야기인데 저게 왜 슬픔?
좋은글 감사합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피할수 없이 맞이해야할 노년
사실 준비한다고 딱히 방법이 있지도 않음
2.첫째아들 2008년 32살에 돌아가심 - 할아버지43세에 낳으심
3.2023년11월5일이 민폐끼친지 214일째라고 한걸보면 2023년 4월경에 계약체결함
4.3300만원 들어있는 통장 이름이 아래층 사람 이름임
* 금융실명제 전이다...동명이인이다...며느리는 재가 했을것이다등등 실화였으면 하는 쉴드가 쳐지는 게시물임
자식들이 재산은 좀 되지만 다들 은퇴를 해서 수입이 없다...
그러면 들어올 자격이 된다고 하더군요...
재산은 좀 있더래도 자식들도 다 늙어서 은퇴를 했다면 봉양하기 힘들테니 요양보호시설에 들어가는게 맞겠다 싶더군요...
그리고 주민센터에서 왜 연락이 가지??
소설치고는 허점 투성이네
저도 아버지 치매로 아버지 통장을 개설하려고 하는데 온오프라인 절대 되지 않습니다.
온라인뱅킹은 얼굴인증 해야 하는데 작성자(직쏘형님 말고ㅋ) 본인이 인증안했을 거고(뒤늦게 발견했다니), 치매환자의 경우 말을 못알아듣고 화를 내니 불가했습니다.(하루가서 실패, 다음에 가서 실패... 어렵사리 여러군데 약관 싸인하고 "본인 동의하십니까" 물음에 네"대답이 나와야"성공했죠.)
휴대폰 개통도 본인이 대리점에 신분증가지고 은행과 같이 직접 가서 동의해야 하니 안되고요.
직접 은행창구에 본인 또는 부인, 자녀 등이 서류들고 가야되는데 이게 가족이라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전혀 가족관계없는 사람의 통장을 만들었다면? 이게 대포통장이죠.
그리고 아래층 사람의 대출상황도 알아냈다니 본인동의없는 신용조회를 한건가?-_-ㅋ, 이것도 사실 불가능한 일인데, 뭔가 여러가지로 현실과 맞지 않는 소설의 느낌....(다른 이웃집에 물어봤을 수도 있겠는데 이런걸 아는 이웃이 있다는 가정도 웃김)
원작성자가 외국의 사례를 각색한거면 제가 모르니까 그럴수도 있겠다 싶긴함.ㅋ
아들에게는 며느리
딸에게는 사위가 있겠네요
재산은 그쪽으로 다 갑니다.
어쩌면 앞으로 더 많은 세대가 이렇게 살아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자식보다 이웃이 더 가깝고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안타깝고, 짠하고, 먹먹하고...
그래도 내용상 현실에 비슷한 상황들 있을겁니다.
저희는 저 것보다 조금 더 양호한 상황이라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자식 셋 잃고서 노년까지 멀쩡한 정신으로 두분이 손잡고 사시는게 쉽지 않았을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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