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대학병원 교수이자 흉부외과전문의 A교수
그는 처와 자식2명이 있다.
교통사고나면 한방병원에 드러누워 안마받다가 합의금받지 않으면 바보라는 인식이 전국민적으로 퍼지다 못해
이젠 의료에서도 10억정도 지르면 1억은 땡긴다는 인식이 생겼다.
법조계에서는 블루오션이라고 병원마다 소송브로커가 상주하며
환자의 보호자들을 부추키고 있었다.
심장 수술의 난이도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예후도 좋지않을 확율도 높았고 각종 소송을 달고있었다. 소송이 일상이 되었다.
폐암수술 같은 경우는 더욱 심각했다.
안하면 곧 죽고 하게되면 약간의 생존할 확률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않하고 싶고 환자에게 권하고 싶지도 않다.
몇 년전 교수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떠난 동료교수 B씨는
귀국을 포기하고 그 곳에 정착을 했다.
그는 이미 형사재판을 받았다. 동료교수가 집도한 심장수술에서
환자가 버티질 못하고 사망을 했다.
수술방법 a,b,c에서 동료교수는 a를 선택했으나 재판부는 b,c를 고려안한 부분이 사망의 인과관계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인정된다며 부분 유죄를 선고했다.
동료교수는 각종 논문을 근거로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까
금고6개월 집유2년을 받아 면허가 박탈되지는 않았다.
부분유죄 판결이 유리하게 작용되어 민사소송에서도 3억원의 배상판결을 받았다. 사망한 환자가 70대라 3억이었지 더 10년만 젊었어도 배상금10억 이상으로 뛰었을 것이다.
그 다음해에 동료교수 B씨는 안식년을 맞아 가족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새로운 교수직을 제안 받았다.
미국 아니, 전세계에서는 수술 난이도가 매우높은 흉부외과나
신경외과의 경우 처우가 좋다. 어려우니 할려는 의사가 없는건
전세계 공통이지만 ... 반대급부로 처우는 좋았다.
한국은 유독 심했다.
의료행위에 유죄판례가 수십년간 쌓였고
모든 의료행위가 적자여서 그 어려운 흉부외과 전문의를
넉넉히 채용할 수도 없었다.
나이 40줄에 당직을 서며 36시간을 연속근무했다.
미래의 흉부외과전문의가 될 전공의 지원율은 항상 바닥이었다.
2024년도 한해 2만여건의 심장수술이 발생되고 향후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한데 남아있는 전공의는 전국 12명이 전부였다.
그 12명이 미래의 2만여건 이상의 심장 수술을 책임 질 것이고
그중 몇몇은 반드시 형사재판을 받을 것이다.
미국에 정착한 동료교수B교수는 A교수에게 연락을 했다.
전 직장이자...
그 큰 대학병원에서 심장을 수술하는 교수는 단 2명이었다.
모든 토의를 단 둘이서 했고 조언해 줄 사람도 물어볼 사람도
그 둘이 전부였다. 서로의 가족을 잘 알고있었으며,
동료교수 B씨는 혼자 남아있는 A교수에게
크나큰 부채감이 있었다. 어렵게 통화를 해 회포를 풀었다.
B교수가 정착한 미국의 병원에서 30만달러의 연봉을 제안했다.
B교수의 연구실적, 수술경험, 의사지도교수로서의 모든 경력을
인정해주었다. 한국돈으로 연봉40억원이었다.
영주권 발급을 위한 신분보장, 주택제공 등 요구하지도 안았지만
병원에서 선제시를 하였다.
땅이 넓어도 너무 넓은 미국에서 흉부외과 전문의는 너무도 귀했다. 게다가 의사를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은 주변 의대에서 전공의를 파견보내 교육을 받게했다. 세미나가 열리면 미국인의대교수까지 학생들을 데리고 오고 수많은 질문을 하였다.
미국의사 사회에서는 한국의사의 수준을 잘 알고 있었다.
몇 년전 전공의 근무시간이 주80시간으로 법정제한하기전에
수련을 했던 A,B교수는 주 140시간을 일했었다.
집도의이자 스승과 함께 수술에 참여했던 건수는 1만2천건
그 중 교수가 되어 집도의로 수술한 건수는 5천건이었다.
흉부외과 전문의이자 스승은 B교수에게 모든것을 전수해주고
은퇴를 하였다. 의사는 그렇게 기술을 후대에 전승한다.
압도적인 임상경험... 동년차 미국의사의 경험치의 10배였다.
그것을 미국의사들은 잘 알고 알고 있었다.
대학병원에서 연봉 1.8억을 받았던 B교수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의대교수라 학생교육과 진료를 겸직하고 당직서서 1.8억이었지 일반대 교수라면 연봉1억이 안되었다.
그런 사실을 B교수는 A교수에게 말을 해주었다.
"자식들 미래도 생각해야지...."
그말 한마디에 A교수는 잠이 오지를 않았다.
내 자식이 사회에 나갈때 쯤이면 노인만 많고 젊은이는 없는
기형적인 사회에 살아나갈게 분명했다.
A교수는 미래는 잘 모르지만 자식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최소한 영어라도 잘하면 많은 기회가 열려있을거 같았다.
지금 달고있는 지긋지긋한 소송만 끝내면 미국으로 넘어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그 사이에 또 다른 소송이 생기면 안되기에
확률이 낮은 수술은 어떻게든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며칠 후 병원에서 비극적인 소식이 들렸다.
22시간째 뇌수술을 하던 신경외과 교수가 수술중 쓰러져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흉부외과 이상으로 장시간 집중력을 유지해야하는 뇌수술에서
결국 이 사태가 났다. 급하게 수술할 의사를 찾아야했다.
어제 당직을 섰던 동료 신경외과 교수는 밤새고나서 수술실에서
다른환자 수술을 하고 있었다.
의사들의 당직은 밤새고 아침에 퇴근하는게 아니라
밤새고 아침부터 낮 정규근무를 하고 퇴근하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당직을 서면 36시간 근무를 하게 된다.
결국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해야하는데
2천만 수도권 통틀어서 뇌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10명이안되었다.
수술할때면 무조건 참여해야하는 마취과 의사가 절대반대를 한다.
마취과 의사는 수술중에 환자의 전신 상태를 모니터링한다.
전원하는 과정에서 이 환자는 사망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아니 환자는 죽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집도의는 이미 쓰러졌고
그 이후의 책임은 수술중 환자의 바이탈을 유지하는 마취과 전문의인 본인의 몫이었기 때문에 그는 극도로 두려워 했다.
즉시 수술을 집도할 신경외과 의사가 없었다.
전원을 시도하면 매우 높은 확률로 환자는 사망한다.
어쨋든 누구라도 형사책임을 져야한다.
모두가 두려워했다.
수술은 중단이 되었고 봉합이 된 환자는 다시 중환자실로 돌아갔다.
흉부외과 전문의 A교수는 이미 한국의 의료는 끝났다 생각을 했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병원에 크나큰 적자를 안겨주었다.
어려울수록 중환자일 수록 비례해서 적자가 커졌다.
나의 의견을 병원에 말할 수 없는 초라한 위치이고
힘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만둬도 갈 곳이 없고 일할 곳이 없었다.
훙부외과는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진 큰 대학병원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밖에서 전문의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미 흉부외과를 하겠다는 전공의가 없어진지는 10년도 넘었다
뭐 흉부외과만 그런가?
모든의료 통틀어 급하고 어렵고 힘든 치료는 적자의 폭이 커지게 되어있다. 수억 수십억 비싼 장비를 들여야 수술이 된다.
그만두면 갈 곳이 없다.
지금 한국의료의 상황은
유입은 불가능하고 이탈이 당연하게 된 상황이 되었다.
내 자식 졸업식에 한번도 못가봤다. 가족여행 가본적이 없다.
이젠 내 가족이라도 잘 챙기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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