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안창호, 국제인권기구에 ‘헌법재판소 비난’ 서한 보냈다
‘국민 50% 헌법재판소 믿지 못해’
윤석열 변호인단과 판박이 논리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위원장이 각 나라 인권 기구 등급을 결정하는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 간리) 승인소위(SCA) 사무국을 맡고 있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윤석열 대통령 변호인단과 판박이 논리로 헌법재판소를 비난하는 서한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는 이 과정에서 지난 10일 전원위에서 의결된 ‘윤 대통령 방어권 보장’ 안건과 관련한 반대의견은 제외한 채 다수의견으로 작성된 결정문만을 첨부해 제출했다. 인권위가 독립성을 잃고 윤 대통령을 옹호하는 모습을 지속해 국제 사회에 노출하며, 오랫동안 간리에서 에이(A) 등급을 받아온 국제적 위상 추락이 우려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3일 한겨레가 확인한 인권위의 간리 답변서를 보면, 안창호 위원장은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 행동'(비상행동)이 간리 승인소위에 제기한 ‘정부 옹호에 나선 인권위’ 등 문제들에 대해, 이를 반박하며 헌법재판소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답변서를 보냈다. 답변서에는 △국민의 50% 가까이가 헌법재판소를 믿지 못하고 △헌법재판소가 법령에 따라 형사소송법을 준용하지 않고 증인과 신문시간을 제한해 불공정하고 불충분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으며 △몇몇 헌법재판관이 속했던 단체와 과거 행적으로 인해 문제가 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 답변은 비상행동이 지난달 14일 간리 쪽에 “한국의 인권위가 독립성을 상실했고, 12·3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는 서한을 보내자, 간리 승인소위가 이를 첨부해 인권위에 답변서를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간리는 5년에 한 번 각 국가 인권위의 등급을 결정하는데, 지난해 10월 국내 인권 시민 단체들 요청에 따라 오는 12일부터 열리는 총회에서 한국 인권위에 대한 ‘특별심사’ 여부를 결정한다. 비상행동의 서한도 이 과정에서 국내 인권위의 상황을 추가로 전하기 위한 목적이다. 답변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안창호 위원장은 “2020년 2월4일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검사 및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 심문 조서라도 공판 준비, 공판 기일에 그 피의자였던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그 내용을 인정할 때 한정하여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헌법재판소는 피의자였던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그 내용을 인정한 바 없는데도 탄핵 심판 증거로 사용한다”며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의 중요한 사실 인정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안 위원장은 또 “형사소송법에 의하면 피고인은 증언에 대한 반대신문권이 보장됨에도 헌법재판소는 원칙적으로 이를 금지하고 있다”고 했다. 안 위원장이 헌재를 비판하며 근거로 든 것은 “탄핵 심판의 경우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한다”는 헌법재판소법 제40조 1항이다. 하지만 해당 조항엔 “헌법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도에서”라는 단서 규정이 먼저 나온다. ‘헌법재판의 기본 성질을 지키되 그걸 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라’는 의미다. 정형식 헌법재판관도 ‘당사자 동의 없는 피의자신문조서 증거 인정은 부당하다'는 윤 대통령 쪽 주장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이 헌법재판이라는 사정을 고려해서 형사소송법상의 전문법칙을 완화해서 적용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2023년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장관에 대한 헌재의 탄핵심판 때도 그대로 적용됐다. 헌법재판소 사정에 밝은 한 법조인은 한겨레에 “인권위 주장은 헌재가 형사소송법 절차를 지켜 사실상 형사재판을 두 번 하라는 것으로, 대법원 확정판결 내용을 보고 나서 탄핵심판의 결론을 내라는 말과 같다”고 했다. 이어 “‘탄핵심판은 형사재판이 아니'라는 국민의 상식을 무너뜨리는 위헌적인 주장을, 헌법재판관 출신인 안창호 인권위원장이 윤 대통령 대리인단과 똑같이 할 줄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안 위원장은 또 답변서에 지난달 10일 전원위에서 논란 끝에 의결된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관련 인권침해 방지 대책 권고 및 의견표명’(이른바 ‘윤석열 대통령 방어권 보장’ 안건) 결정문만을 첨부했다. 남규선·원민경·소라미 위원의 반대의견과 김용직 위원의 별도 반대의견은 포함하지 않았다. 헌재에 대한 비판 의견만 전달한 셈이다. 간리 승인소위는 12일부터 제네바에서 열리는 간리 총회 기간 중 회의를 열어 한국의 인권시민단체들이 지난해 10월 요청한 한국 인권위에 대한 특별심사 여부를 결정한다. 안 위원장은 8일 제네바에서 열리는 간리 총회 참석을 위해 출국한다. 인권위는 그동안 에이(A) 등급을 유지해왔으나 이명박 대통령 재임 기간 현병철 위원장 시절 등급보류를 당한 적 있다. 인권위 한 관계자는 한겨레에 “안창호 위원장의 서한은 다수 위원의 결정문 보다 더 나아가 헌법재판소를 비난하고 재판관들의 과거 행적까지 거론하며 폄훼했다”며 “만약 대통령이 탄핵되더라도 불공정한 결정이므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인권위가 대통령을 옹호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국제적 망신을 살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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