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무빙 --
내가 자꾸 무슨 얼치기 드라마 감상평이나 쓰고 있다며 비웃는 사람들도 있는 것같은데, 요즘은 지성을 대표한다는 대학교수란 자들이 곡학아세하며 권력에 충성서약서나 쓰는 시대다. 그런 자들이 쓰는 책이나 신문사 논설보다 차라리 주말 드라마가 덜 3류스럽다고 본다. 오징어, 더 글로리같은 드라마가 오히려 우리 현실을 더 잘 대변하고 있는데, 대체 어쩌다 이런 시대가 오게 된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웹툰 원작의 허무맹랑한 드라마 감상평을 쓰려 한다.
'무빙'은 우리 시대에 남들과 '다른'사람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사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드라마다. 드라마의 예술성, 작품성을 따지자면 엑스맨이나 슈퍼맨 어벤져스 게다가 옛날 6백만불의 사나이나 소머즈까지 신나게 표절해서 갖다 붙인 느낌이라 뭐 별로 말 할 것도 없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도, 우리의 현실을 이런 대중작품들이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를 얘기하고 싶다.
우리가 '대우'해주는 능력과 '대우해주지 않는' 능력이 있다. '무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때문에 그들 모두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간다.
대우해주는 능력이란 어떤 것일까? 그건 힘을 가진 강자에게 충실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자기 '조직'의 논리에 충성하는 능력도 포괄한다. 누군가가 요구하는 '정답'만을 맞출 수 있는 능력 역시 높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이다.
고등학교때 윤리 선생님이 수업때 이렇게 얘기했었다. "5공화국이 통일을 위해 어떠어떠한 일을 했다는 이 교과서의 내용은 엉터리들이다. 하지만 시험문제에 그런 게 나오면 너희는 그렇게 써서 맞추는 수밖에 없다".
'무빙'의 민차장 (문성근)은 오로지 '조직의 논리'에 충성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늘 성공하고 높은 자리에 오른다. 일제강점기 고등계 형사 노릇을 하며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던 노덕술이나 5공때 고문기술자 이근안같은 사람도 '대우받는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해방 이후에도 군부정권 종식 이후에도 계속 부귀하게 잘 살았다.
그러나 '대우받지 못하는 능력'이란 무엇일까? 대표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일 것이다. 이런 능력은 지금같은 세상에서 성공하는 데 아무런 쓸모가 없다. 고통받는 사람들은 약자들이며 나의 성공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하지만, 약자들의 고통을 도저히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강자들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 약자들의 편에 자꾸 서려 한다. 그래서 계속 삶이 힘들어지고 가족들도 고난을 겪게 한다.
무빙의 김두식이 그렇고 장주원이 그렇다. 민차장은 김두식에게 그걸 '싸구려 휴머니즘'이라고 표현했다. 남자들한테 다구리 당하는 다방 레지를 구하려 나서는 장주원은 '로맨티스트'라고 불리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모두가 한 방향으로 달려가도록 몰아붙인다. 그걸 초등학교때부터 교육시킨다. 내신 성적, 중간고사 모의고사 기말고사 그리고 수능, 입시, 사법고시, 공무원 시험. 사내 승진평가, 그런 단 하나의 평가 기준으로 서열화시키는 게 사회의 가장 중요한 시스템이 되어 있다.
모두 다 똑같은 기준에 맞춰서 한 방향으로 달려가도록 만들어 놓고 거기서 이탈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가는 자들은 낙오자로 분류한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일제 우익과 군부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다름'이란 인정될 수 없다. 인간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단 하나이기 때문이다. 서열에 따른 "차별"이 있을 뿐이다.
'무빙'은 그 낙오자들을 그리기 위한 이야기들이다. 그리곤 우리 사회를 둘러보게 만든다. 자기 회사나 수사기관이나 부녀회나 혹은 어떠어떠한 협회, 사업체들. 그런 조직의 이익에만 충성할 줄 아는 사람들이 아니면 드라마의 능력자들처럼 낙오자로 취급한다. 조직의 부조리나 부패에 대한 내부고발자들은 아예 살아남을 수가 없다. 범죄자를 수사, 처벌할 권한을 가진 수사기관의 고위직들이 사실은 자기들이 성범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데 그걸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조직에 충성할 수 있다는, 그런 능력이야 말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우대 받는 능력이다. 조직에서 피해를 입은 자들을 눈감지 못하는 능력, 옳은 일을 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 사회에서 절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능력이다. 그들은 '괴물'로 치부되고 결국은 낙오되고 만다.
이 드라마에서 의외로 눈물을 자아내도록 만든 인물은 최일환 (김희원)이다. 정원고의 3학년 3반 담임선생. 그는 조직을 위해 일을 시작했지만 결국은 조직의 이익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하게 된다. 이제 그는 변절자, 배신자가 되어 버린다. 사람을 위해, 학생들을 위해 일을 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드라마에서 초능력자들을 '괴물'이라고 부른다. 이제 우리가 고민하며 말할 때가 되었다.
누가 과연 우리 사회의 괴물일까?
장애인들이 지하철에서 시위를 벌이는 것을 보며 "시민을 볼모로 잡는 폭력"이라고 비난하는 사람과 "그분들이 오죽 힘들면 그렇게까지 할까"라며 공감하는 사람. 이 중 누가 괴물인 걸까? 술주정을 부리며 1등석에서 난동 끝에 항공기를 회항시킨 재벌2세가 한 일을 그대로 세상에 전달한 사람과 그걸 회사에 피해를 끼쳤다며 이지메를 시키는 사람들, 그 중 누가 괴물인가? 남의 자식을 급류에 휩쓸려 사망하도록 만들어놓은 책임자를 법에 따라 기소하겠다는 사람과 그걸 덮지 않으면 항명이고 배신이라는 자들, 어느쪽이 괴물인가?
이 드라마가 종국에는 어벤져스의 한국판이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초능력자들'이 구해야 하는 건 '지구'나 '우주'가 아니다. 아픔과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고 갈수록 둔감해지는 우리 사회부터 빨리 구해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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