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내 시계만 쳐다보다 차라리 학교 앞에 가서 차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천천히 차를 몰아 은광여고 운동장에 정차하고 나니 나와 학교폭력개선을 위한 모임을 함께하는 박숙영 쌤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은광여고에서 전화가 오면 받으라는 거였다. 아침에 급히 학교로 전화를 하신 모양이다. 이어서 승일씨와 순교가 함께 하기 위해서 와주었다.
잠시후 '인성부장'이라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만둔거 아니었냐고 물었더니 복직했다며 나에게 교무실로 오라고 했다. 졸업식이 곧 열릴 강당과 교무실은 멀었고 식이 임박했는데 교무실까지 올라갈 이유가 없었다. 강당으로 바로 간다고 했더니 자신이 내려오겠다고 했다.
운동장으로 내려온 인성부장은 떨떠름한 얼굴로 어떻게 오셨냐, 고 물었고, 같이 있는 두 사람을 쳐다보며 이 사람들은 누구냐고 했다. 동생들이고 같이 왔다는 대답에 왜 왔냐고 되물었다. 그걸 왜 묻나… 졸업식에 식구가 같이 오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학교로 친구라는 분이 전화를 했고 주원이의 명예 졸업장 요청을 받았다면서 졸업장이 준비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성부장은 (나에게) 어머니가 원하시는 게 뭐냐고 다시 물었다.
나는 졸업식에서 참석해서 발언을 할 것이며 학교 차원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주원이와 남은 가족들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했더니 인성부장은 헛웃음을 치며 "그건 뭐…"라며 말끝을 흐렸다.
은광여고는 학폭위, 재심, 행정심판을 거치는 내내 드러나는 증거와는 달리 '가해자, 피해자 없음'으로만 대응했는데 아이들이 스스로 자퇴를 했다면 자신들의 잘못을 알기에 도망간 것이고 이제라도 학교는 공식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라고 했다. 인성부장은 계속 웃었다
더 이상 길게 말 할 필요도 없기에 발걸음을 강당으로 옮겼다. 강당 입구에 도달하자 사태를 수습하기위해 나타난 교장은 "어머니! 졸업식도 참석하시고 명예 졸업장도 드릴게요. 발언도 하세요" 했다. 상복차림으로 영정사진을 든 내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뜨아함 그 자체였고 혹은 수근거리기도 했다. 아무런 관심도 없이 자기 일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졸업생들과 단상 사이쯤에 서있는데 이사장 김승재를 비롯한 내빈이 들어왔고 한명의 여교사는 주원이의 영정사진을 쳐다보며 "저건 또 뭐야"라고 말을 했다. 그 나이쯤 되면 척봐도 상복차림의 사람이 든 사진이 영정사진이라는 걸 알만한데도 교육자인 사람이 사람의 사진을 보며 저거라니... 사물이된 순간이었다.
교장은 단상에 함께 자리를 하라고 했고, 난 씩씩하게 걸었다. 내가 앉은 자리는 바로 김승재 이사장 뒷자리. 식이 시작되자 교장은 내빈 소개를 했고, 내 차례가 되자 주원이가 학교폭력 희생자로 투신하여 사망해 졸업식을 참석하지 못한 이유는 뚝 떼어내고 단순히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게된 아이의 어머니가 대신 졸업식에 참석했고 자신들이 지난 3년간 마음으로 함께 했다"며 소개를 했고 급조된 명예 졸업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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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어떻게든 모양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었다. 앞뒤 전후를 모르는 사람이 보는 이 상황은 학교가 하해와 같은 큰 배려로 주원이와 나를 미리 초대해서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는 모습으로 보일게다. 단상에 함께 있었어도, 진행 순서에 따라 왔다 갔다 했어도 이사장을 비롯한 내빈, 교사들 그 누구도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발언 시간을 주겠다는 교장은 처음 말과는 달리 나에게 발언 시간을 주지 않고, 식순은 차곡차곡 진행됐다. 가깝게 있던 교장에게 내 발언 차례는 언제냐 물었더니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러냐고 묻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것이다.
식순의 끝 순서인 교가 재창까지 끝나고 나서도 나에게 발언 시간은 주어지지 않은 채 폐회식 선언 멘트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발 빠르게 마이크로 향했다. 그제 서야 교장은 마이크를 잡고 서서 잠시만 멈추고, 주원 어머니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니 들어보자며 강당을 나가려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말했다.
결코 격앙되지 않은 톤으로 단상 아래 있는 졸업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말했다
조용히 해주십시오.
쉽지 않은 발걸음이지만 여러분이 보고 싶어서 왔고, 여러분에게 나의 말을 전하기 위해서 왔으니 잠시만 들어주십시오. 저에게 발언 기회를 안주시려고 자꾸 뒤로 미뤄서 제가 이렇게나마 요청하니 나가지 마시고 들어 주십시오.
여러분들 중에는 주원이가 누군지, 제가 누군지 아는 분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까 교장 선생님께서 주원이와 저를 소개할 때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아이라고 단순히 말씀하셨지만 주원이는 학교폭력 은광여고 왕따 사건으로 시달리다 하늘나라로 간 아이이고, 은광여고는 주원이가 그렇게 당한 것에 대해서 가해자, 피해자 없음으로 처리했습니다. 학교는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단 한번도 사과하지 않았으며 주원이 장례식조차도 학교는 숨긴 채 나중에서야 1학년 9반 아이들을 모아놓고 "주원이는 중학교 때 학교폭력으로 힘들어하다 자살한거다"라고 일축해 버렸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일입니다.
저는 오늘 졸업식에 초대받아서 온 것이 아닙니다. 굳건하게 마음먹고 여러분들 혹여 상처받을지도 몰라서 걱정도 했지만 도저히 어미로서 이 순간, 이 자리를 안 올수 없어서 왔습니다. 마치 초대받은 사람, 준비됐던 것처럼 단상에 올랐지만 저는 아무 준비없이 계획없이 저 스스로 온 겁니다. 비록 외면당하고 존재조차도 무시당한 채 세상을 떠난 아이지만 어미로서 내 아이의 졸업식을 해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졸업 망치려고 온 게 아니라는 말씀 드립니다. 단상에 앉아 403명의 졸업장 수여를 한 명, 한 명을 바라보았습니다. 내 자식도 소중하지만 여러분들도 소중한 우리 모두의 딸들입니다. 이사장은 2016년도 졸업식 축사에서도 여러분의 선배들에게 "내가 200억을 투자했는데 명문대 진학률이 고작 이거냐며 모멸감을 주었고, 그 발언은 언론에 뉴스거리가 되서 엄청난 욕을 많이 드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졸업축사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고 여러분들에게 "야망을 가지고 성취해서 리더가 되라. 성취하면 주인으로 살 것이요 성취하지 못하면 노예로 살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졸업하는 403명 중에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원하지 않았던 대학에 가는 사람도 있고 안가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403명 모두가 똑같을 수 없습니다. 성취하지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403명중에 단 한 명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여러분 모두가 사회로 나가 시련이 생긴다 해도 실망하지 말고, 주원이처럼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외면하지 말고 손잡아 주고, 어른들의 비겁함을 배우지 말고, 젊은 여러분이 희망이니 사람답게 함께 사는 세상, 스스로에게 주인이 되어 만들어 주시길 부탁합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졸업을 축하합니다.
발언을 하는 내내 교장은 안절 부절하며 마이크를 뺏으려고 했고, 중간 중간 마이크 뺏기지 않으려고 저지하며 말을 이어가다 보니 떠오르는 말도 날아가고 두서가 없었지만 기억나는 나의 발언은 그랬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김승재 이사장이 미리 나가 버려서 듣지 않았다는 것 그래도 졸업생들과 학부모들은 강당을 빠져나가지 않은 채 서있던 그대로 멈춰서서 나의 말을 집중해서 들어줬으며 일부 학부모는 박수도 쳤다.
발언을 다 끝내고 교장에게 말했다. "상황을 기회로 활용하시려는 능력이 탁월하시군요. 하지만 나는 오늘 헛껍데기 명예 졸업장 하나 받으러 온 거 아닙니다. 당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어린 사죄를 받기 위해서 왔으나 교사들은 삐딱했고, 저건 뭐야라고 했으며 이사장 김승재는 정중한 인사 한마디도 없었고, 일체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무시하고 나갔습니다. 오늘이 끝이 아님을 아십시오"
사죄도 용기가 필요한 것인데 오늘도 은광여고는 용기가 없는 비겁함을 보였다. 단상 위에서 발언하는 나를 꼼짝 않고, 시선 마주치고 공감하면서 들어주던 아이의 모습들이 그나마 가슴에 남는 하루였다. 이래서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낫다.
2018년 2월 8일 은광여고 졸업식을 다녀와서의 기록
(사진은 기록을 위해 함께해준 순교 동생 찍어줬고 발언하는동안 주원이 영정은 학교폭력의 고통을 시로 승화시키고 있는 승일 동생이 들어줬다
권경애 노쇼사건 타원서 작성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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