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유한양행 폐암 신약 무상공급 뉴스)보고
너무 감사해서
홈피 드가서 고객이 글 쓰는데다가
정말 감사하고. 앞으로 응원할꺼고 솰라솰라 이런 글을 썼는데요.
바로 오늘 문자가 왔어요.
유한양행에서 온 문자라고 떠서 뭐지....광고인가 하고봤는데.....
와. 이런 큰 기업에서 고객의 한마디에 세심한 답장을 해 주시네요.
문자로 감사인사를 보내신거에요.
담당님이 누구신지 진짜 고맙네요.
이런 작은 부분도 신경 써주는 유한양행♡
대대손손 요기제품 많이많이 사쓰는게 서로 돕는거겠죠^^~
신기해서 글써봅니당^^
문자내용:
국민의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데요ㅜㅜ
국민 ㅠㅠ
참 듣고싶던 말을 유한양행이 해주네요.
엄지척!!!
헙!!!!
추천이 많아서 인기글에 갔나보네요.
오~~~
이런기분이군요. ㅎㅎㅎ
이 관심과 기분좋은 에너지를 가지신 여러분과 저는
유한양행처럼 멋진 기업이 더욱 성장할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제품도 많이많이 사서 빨리빨리 써주자구용^^
헤헷~~
네이버에 검색하니 유한양행제품 좋은것이 많네요.
그동안 메뚜기처럼 여기저기 물건 산 저는 반성합니다.
정말 멋진 기업~
그외 기억이 안나는데 유한양행 유한킴벌리 제품만 사용중입니다.
기부 형식으로 상납을 했는데 유한양행 만큼은 단 돈 한푼도 내 놓지 않으니
박정희의 괴씸죄에 걸려서 세무담당 직원들을 보내서 탈탈 먼지를 3 개월간 정말
누가 봐도 유한양행 죽이려고 털어지만 정말 아무 것 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치 지들이 도적질한 짐당이 엄 한 이재명 님을 털듯이 했지만 뭐 유한양행이나 이재명 님이나
무슨 건덕지가 안 나오고 짐 당 넘들만 나오니 덮듯이 한 거와 똑 같아서 그 생 양아치
난장이 뭐 처럼 생겨서 매독을 항시 달고 살던 박정희 마저도 두 손든 기업이 유한양행 입니다
우리 조용히 응원해보자구요!!!!
훈훈합니다.
오뚜기가 아니라
사용할 날이 오면..
락스는 진작에 유한락스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항거* 영화보면서 독립운동을 안했다면 어찌됐겠나. 친일파,독립운동가, 유일한박사님, 유한양행. 안티푸라민, 락스. 코푸시럽, 치약칫솔등등등 이런 많은 이야길했어요.
만약 이 글로 인해 유한양행의 선한 기업정신을 국민들이 더 잘 알게 된다면 정말 저는 행복할것 같아요.
이런 마케팅이라도 하세요~~유한양행!!!
♡♡♡♡♡
저도 몰랐거든요ㅜㅠ
컴플리트케어 그것만 쭉 쓰는중입니다!
좋은 정보감사해요
끝판왕입니다.
겁나 국민 세금 까먹는 공기업 들 전화도 잘 안되지만..~~~
열라 팽팽이 돌림.
유한양행과 깊은 관계에 있는 사람입니다.
잘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좀더 열심히 일해보겠습니다.
아. 이건 제 생각인데 짧은글속에 참 많은 생각이 뭍어있는게 느껴져요. 제가 받은 답장에도 그렇구요~~^^
늘 애써주신다니 또 한번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 그 안에서 회사를 이끌어가는 분들도 멋지세요.
최고!!!♡♡♡♡♡♡
미소가 절로 나오네요^^
유한양행 화이팅!!
졸업연도가 2002년입니다.
1904년 봄, 한 소년이 제물포에서 대한제국 순회공사의 손을 잡고 멕시코행 여객선에 올랐다. 이 배에는 미국 유학을 가는 소년들과 하와이로 가는 이민 노동자들도 타고 있었다. 9세 소년은 미국 중부의 네브래스카주(州)에 사는 미국인 자매에게 맡겨졌다. '리틀 유'라고 불리던 이 소년이 후일 『유한양행』을 세운 기업가 유일한(1895~1971)이다.
소년은 식당 심부름, 신문배달, 구두닦이 같은 허드렛일을 하며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때 박용만 등이 세운 '소년군사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학교에서는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북간도로 이주한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100달러를 대출받아 송금했다. 유일한은 이 융자금과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변전소에서 일했다.
유일한은 미시간대학에서 법학과 회계학을 전공했다. 비단, 손수건, 부채, 찻잔, 쟁반 등 동양의 일용 제품을 도매점에서 사다 중국인에게 되팔아 돈을 모았다. 이 돈을 종잣돈 삼아 대학 동창과 동업으로 『라초이 회사』라는 동양 식료품 판매 회사를 세웠다. 특히 숙주나물 통조림을 제조 판매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1927년 아내인 소아과 의사 호메리와 함께 돌아와 『유한양행』의 초대 사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서양 의약 품을 팔던 회사를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제약 기업으로 키웠다.
유일한의 경영 이념의 특징은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었다. 유일한은 기업의 기능에는 유능하고 유익한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까지도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기업 경영에서 얻은 이윤을 육영 사업에 희사함으로써 자신의 정직한 청지기적 소유 관념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회사는 개인이나 가족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위한 공기(公器)이며 국가에 의한 보호와 사회의 협조로 기업 이윤을 올렸으므로 그 결과는 당연히 사회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71년 3월 11일, 유일한은 눈을 감았다. 유언장에는 그가 소유했던 유한양행 주식 14만 9백 41주(시가 2억 2천 5백만 원) 전부를 재단법인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신탁기금’에 기증하도록 지시하고, 딸 유재라 여사에게 오류동 유한중·고등학교 교내이자 그의 묘소가 있는 5천 평의 대지를 상속하여 『유한동산』으로 꾸미도록 부탁했으며, 손녀 유일링(7세)이 대학까지의 학자금으로 쓰도록 1만 달러(320만원)를 주도록 하였고, 미국에 있는 장남(유일선)에게는 일체의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고 ‘너는 대학까지 졸업했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국가적인 위기를 맞이하여 유일한의 기업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더고 습해서 죽겠는데 말이죠^^
30년도 넘는 예전에 어려운 가정형편에 유한공고 장학금 받고 다녔습니다.
저다니기 전에는 전학생 장학금이였는데, 전두환시절 고교 평준화 한다고 전학생 장학금 폐지되었지요.
그 후에도 서클 활동하면 장학금을 주었습니다. 50% 이상은 장학금 받았습니다.
박사님 따님도 계시는데 돌아가시면서 전재산을 재단에 기부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안티푸라민, 락스,삐꼼씨,코푸시럽,유한킴벌리휴지.칫솔치약 손세정제. 이런거 말구도 진짜 많으니 좀만 신경쓰면 다 우리가 쓰는거라 ~~^^
마트가서 이것저것 샀는데 구분하기가 쉽지않지만 골라서 담을때 기부니가 좋드라구여^^
감사합니다.
독립운동가이시며 사회에 회사를 환원
정말 위인이십니다.
유한양행 약은 선택할 때 최우선입니다. ㅎㅎ
출처 : 서울경제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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